박정희 전 대통령은 막걸리와 관련해 에피소드가 많다. 처갓집인 충북 옥천을 방문하면 사랑채 툇마루에서 막걸리를 즐겼다고 한다. 고양의 배다리 막걸리와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도 박정희의 흔적이 남아있다. 박정희는 어떤 막걸리를 즐겨 마셨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처가이자 육영수 여사의 생가는 교동집, 혹은 ‘삼정승집’으로 불렸다. 17세기에 지어진 반가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이다. 후원과 과수원을 제외하고도 대지면적만 1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큰집이다. 현재는 문화재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일제식민지 시절 육여사의 부친 육종관씨가 이를 사들여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그 시절, 육씨의 땅을 밟지 않고는 옥천땅을 지날 수 없었다고 할 정도로 부자집이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편에 주차장과 주유소가 있었다. 대문과 마주보는 곳에 사랑채가 있었다. 사랑채를 돌아가면 안채가 집 중앙에 위치해 있다.
박정희는 처가를 찾을 때마자 사랑채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주문해 마셨다고 한다. 옥천에서는 어떤 막걸리를 마셨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고양 배다리 막걸리
서울 인근에서 박정희 막걸리로 알려진 술은 고양시의 배다리 막걸리다.
당시 배다리 막걸리는 '청와대의 빗장을 연 바로 그 술'이라고 광고한다. 그가 14년 동안 청와대에서 즐겼다고도 전해진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삼송리에 있는 어느 주막에 들렀다. 그때 맛본 쌀 막걸리 맛에 반해 서거 당일까지 즐겼다고 한다. 배다리 술도가는 '대통령 전용 막걸리'를 별도로 빚어 납품했다고 한다.
당시 대통령이 마셨던 배다리 막걸리는 요즘 말로 프리미엄급이었기 때문에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쌀로 술을 빚는 일이 불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되었는데 박 대통령이 마시는 술만큼은 별도의 밀실에서 최고급 쌀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부산에서는 금정산성 막걸리가 유명하다. 조선시대 이 마을 사람들은 생계 수단으로 누룩을 만들어 팔며 술도 빚었다. 18세기 초 조선 숙종 때 금정산성을 축조하러 각지에서 몰려든 인부들이 마을의 막걸리를 맛보면서 전국으로 알려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부산 군수기지사령관 시절 산성마을을 자주 찾아 막걸리를 즐겼다. 한참이 흐른 뒤 산성막걸리가 밀주여서 단속 대상이라는 사연을 들은 박 대통령은 합법화를 지시했고, 대통령령을 통해 1979년 대한민국 1호 민속주 허가를 받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최고 애주가로 꼽힌다. 종종 농촌을 찾아 막걸리 잔을 기울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술을 마시는 것은 비슷했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타서 마시는 막사이주나 소주에 맥주를 타서 마시는 소맥을 즐겼고, 안주는 풋고추나 삶은 호박잎에 된장을 좋아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기자들과 술을 함께 할 때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막걸리를 그득 부어 주었다. “각하! 저는 술을 잘 못합니다”라고 사양이라도 하면 “이건 대통령이 주는 술이야, 마시게”하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마셔야 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술안주로 풋고추와 오박전, 마늘쫑, 간단한 찌개였고, 갈비나 닭고기 안주가 올라와도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술에 취하면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몸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는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짝사랑’이거나 ‘황성옛터’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대표하는 술은 막걸리다. 월간조선 1985년 4월호 ‘박정희 대통령과 술’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박진환 전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은 박 전 대통령의 막걸리 사랑을 이렇게 기억했다.
“오후 5시쯤 되면 대통령이 우리한테 전화를 했다. ‘보좌관들 다 있어? 식사 같이 해’ 이런 내용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6시에 식당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막걸리가 너무 지겹게 나와서 오늘도 또 막걸린가 하고, 조금 먼저 가서 식당에 목을 쏙 내밀고 살피곤 했다. 그때 막걸리 통이 있으면 아주 질색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새마을운동 현장 시찰 때 막걸리와 새참상을 따로 준비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에게 막걸리는 술 이상의 의미였다. ‘서민 대통령’ 이미지를 얻기 위한 매개체였다.
시대상을 엿볼 수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막걸리에 맥주를 타서 마시는 ‘맥탁’을 즐겨 마셨는데, 이는 ‘쌀 금지령’이 풀린 뒤 생긴 습관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쌀이 부족해지자 정부는 분식을 장려했고, 밀에 입맛이 길들여진 뒤엔 쌀로 빚은 막걸리가 심심하게 느껴진 탓이다. 박 전 대통령은 막걸리 맛이 예전과 같지 않다며 맥주나 사이다를 타서 마셨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과 단둘이 대작해 본 모 기자의 전언에 따르면 중국집에서 배갈을 24병이나 비워 이것이 박 전 대통령이 생전에 세운 비공인 최고 기록일 것이라고 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시쳇말로 막사이주(막걸리+사이다), 맥탁주(맥주+막걸리)를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막걸리가 일종의 속임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술은 ‘시바스리갈 12년산’이다. 지금은 대중적인 양주지만, 1988년 양주 수입 자율화가 되기 전엔 사회 고위층만 마시는 고급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