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를 구하려거든 술잔을 들어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서 주점 ‘낙원’을 운영하는 권도경씨의 본업은 화가다. 지난 1월22일부터 한 달간 갤러리 술라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아 앵콜 전시까지 마쳤다. 이 전시의 주제는 ‘일잔춘몽’(一盞春夢:한 잔 술의 봄꿈)이다.
작품은 모두 술에 관한 단상을 시와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전생이 작가이고 현생은 술꾼이라고 자처한다. 혹자는 불세출의 술꾼이라고 말한다.
작품에 적힌 시적 에스프리가 눈길을 끈다.
<탁주는 백성의 술이라 잔 하나에 백가지 맛을 품고 있다. 청주는 군자의 술이라 맑고 고요하다. 소주는 제왕의 술이라 향기롭고 고독하다. 모든 술들은 저마다의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장기라 할 수 있는 취중작화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도 안고 있다.
<술 한잔에 추억과, 술한 잔에 사랑과, 술 한잔에 쓸쓸함과/술 한잔에 동경과,술 한잔에 나와, 술 한잔에 어머니, 어머니>
그는 두주불사에 청탁불문의 술꾼이지만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작품에서는 막걸이 예찬론이 펼쳐지기도 한다.
<술은 밥이 되고 약이 된다. 막걸리는 밥과 같은 술이라 장복해도 해로울 것이 없다>
그를 만나기 위해 낙원상가 부근의 ‘낙원’ 주점을 찾았다. 공간의 반은 주점이고 반은 작업실이다. 작업실 입구에 골판지에 명패를 써붙였다.
<이곳은 낙원 음주도서관/ 지식을 찾으려면 책을 펼치고 지혜를 구하려거든 술잔을 들어라>
주점 공간은 샤무엘 베케트의 연극 무대처럼 초현실적이다. 4~6인용 테이블 한 개 뿐인 술집이다. 한 쪽 벽면은 그가 빚은 다양한 증류주들이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가 70도짜리 증류주를 한 잔 시음해보라며 권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넘기자 향기가 진동했다. 타격감이 없이 쉽게 넘어간다. 그의 술 빚는 솜씨가 보통이 아닐 것이다. ‘낙원’은 아는 사람만 찾는 이색적인 술집이다.
“이 술집은 예약제로 운영합니다. 전화가 오면 손님들에게 세가지를 물어봅니다. 방문시간과 인원, 그리고 ‘싫어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을 합니다. 안주는 제가 좋아하는 요리를 만듭니다. 가장 맛있게 만들 수 있죠. 당연히 제철 식재료를 사용합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가 매일 술에 취하다시피 살아도 건강한 것을 두고 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는 좋을 술을 직접 빚어 마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술집 주방은 양조장이기도 하다. 싱크대 위 다라이에 쌀을 물에 담궈 놓았다. 이 쌀로 막걸리도 빚고 증류기를 이용해 소주를 빚기도 한다.
“한 번은 이 공간에 50명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앉을 자리가 없어 주방까지 들어가 스탠딩 술집이 되었죠. 어떤 사람은 저하고 술 먹는 게 소원이라고 찾아오기도 해요. 좋은 술 있다고 같이 먹자고 예약하는 사람도 있죠. 제가 페이스북 때문에 조금 알려졌어요. 와인 동호회에서 왔는데 제 술 먹고는 전통주 동호회가 돼버렸어요. 여기 오는 손님들은 대체로 술에 대한 소양이 있는 분들입니다.”
권도경씨의 술 빚기 경력은 10년이 넘는다. 막걸리 학교를 다니기도 했다. 그가 스승으로 모신 분은 삼해주의 명인 김택상 선생이다. 스승의 후계자로 지정받아 전수장학생이 됐다. 그의 술 빚는 솜씨는 여기서 나온 셈이다.
“삼해주를 먹어보고 술의 품격을 알았어요. 스승님을 사흘 연장 찾아가서 승낙을 받았죠. 이 주점이 원래 비즈니스 할 때 미팅룸이었는데 매일 음주를 했어요. 그래서 아예 영업신고를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죠. 발효연구를 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모인 ‘재미 발전소’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가 행정절차를 밟아 명인이 될 수 있었지만 스승이 돌아가시고 먹고 노느라 지나치고 말아 아쉬움이 남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의 술 빚는 솜씨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술의 대한 경계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술은 신과 소통시 필수적이죠. 잘못 마시면 짐승과 연결되고, 그 중간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겁니다”
그의 그림은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수준급이다. 그는 한 때 광고회사를 운영하며 디자인 실력을 발휘했고 카피라이터 역할도 했다. 촌철살인격인 싯구도 이런 바탕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술이 약간 취하면 그림 작업도 더 잘된다고 한다. 그의 매일 하루는 술에 취하는 중이거나 깨는 중이다. 술의 품격이 깊을수록 그림도 품격을 더해 가는 듯 하다.




